안녕하세요. 오늘의 soso HAN story에서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유명한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이 피겨에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건 김연아 선수에 의해 생기게 된 건 당연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피겨 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이쁘고 재치있는 입담과 수많은 광고도 찍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곳이 있으면 기부도 하는 기부천사이기도 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데뷔부터 은퇴까지 세계신기록만 11회 경신을하고 출전하는 대회마다 모두 휩쓸어 피겨여왕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매 대회마다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인형을 좋아한다는 인터뷰 한마디에 대회가 끝나면 인형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피겨계에는 정부와 국민의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천재적인 재능으로 일어섰고 주니어 시절부터 유명해졌습니다. 일본의 아사다마오 선수는 어릴적부터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걸어와 환경의 덕을 많이 봐온 선수입니다. 한일전은 축구나 야구뿐 아니라 피겨계에서도 김연아 VS 아사다마오로 경쟁을하며 국민의 관심이 더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실력으로 말하면 2008년까지는 아사다마오가 조금 앞섰지만 2009년부터는 김연아 선수를 따라 올수 없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인기는 2012년 초등학생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무려 48%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광고를 찍으면 모두 히트 상품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정도의 인기는 K팝 스타보다 더한 총평을 받았고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슈퍼스타 중 한명에 꼽히기도 하였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도 김연아 선수를 세계적인 인물로 손꼽아 수많은 팬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6살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빙상에서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봐 류종현 코치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피겨 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전국동계체육대회 및 각종 피겨대회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첫 국제대회 출전하여 13세 이하부분에서 우승까지 하였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12살에 트리플 점프 5종을 완성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피겨 스케이팅 국가 대표로 선발 되었고 2007년까지 대한민국 신혜숙, 지현정, 김세열 코치가 담당했습니다. 2007년 부터 2010년까지는 브라이언 오서, 2010년부터는 피터 오피가드가 코치를 맡았습니다.
그동안의 주니어 국제대회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큰성과를 얻었지만 2006년 동계 올림픽에는 나이 제한에 걸려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11월에 개최된 시니어 데뷔에서는 3위 입상, 연이어 열린 트로피 에릭 봉파르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시니어 대회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12월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에서는 아사다마오를 12점 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2007년 1월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는 허리 부상으로 출전 포기하지만 2월에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부상중임에 불구하고 고등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2007년 3월 일본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쇼트프로그램 1위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2차례의 넘어짐으로 종합 3위로 시니어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냅니다. 2007년 12월에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쇼트프로그램 1위, 프리스케이팅 2위, 합계점수 196.83점으로 2연패를 달성합니다.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2연패는 타라 리핀스키 선수와 이리나 슬루츠카야에 이어 세번째 기록입니다. 한 시즌에 그랑프리 시리즈와 파이널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것도 미셸 콴 선수와 이리나 슬루츠카야에 이어 역대 세번째이기도 합니다.
2008년 10월 그랑프리 대회에 출전하여 쇼트프로그램 1위,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합산한 193.45점으로 우승을 합니다. 11월에 열린 2차 그랑프리에서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며 우승을 차지합니다. 2008년 컵 오브 차이나의 우승으로 김연아 선수는 그랑프리 대회 5연속 우승을 달성, 그랑프리 파이널의 진출을 확정하였습니다. 2008년 12월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다소 실수 부분이 있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너무나도 완벽한 실력으로 1위에 오릅니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넘어지는 실수로 인해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을 차지하고 김연아 선수는 은메달을 차지 합니다. 하지만 그랑프리 파이널에 출전한 여자 선수들 중에서는 3회전, 3회전 연속 점프를 성공시킨 선수는 김연아 선수 뿐입니다.
2009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자신이 세운 세계 신기록을 다시 경신하게 됩니다. 쇼트프로그램 76.12로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며 총점 207.71점으로 여자 싱글 역사상 최초로 200점을 넘은 세계 신기록을 달성 합니다. 이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롤 모델로 삼았던 미셸 콴의 기립박수를 받아서 자신의 최고의 날이기도 합니다.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어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김연아 선수는 발목 부상을 딛고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펼처 쇼트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며 다신한번 세계 신기록을 경신합니다.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쇼트, 프리, 총점까지 모두 세계 신기록을 갱신을 합니다. 자신의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는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피겨 스케이팅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2012년에는 소치 올림픽 출전을 선언하고 세계 선수권 출전권을 얻기 위채 국내 대회에서 열리는 경기도 출전을 하였습니다. 12월에 열린 NRW트로피에 출전하여 총합 201.61로 우승을 차지 합니다. 2013년 세계 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쇼트 1위로 마치고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합산하여 218.31로 세계 선수권 역사상 가장 높은 우승 점수를 획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인하여 세계 선수권 두번째 우승을 거머쥐는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에 출전을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많은 잘못된 판정과 승부조작을 의심하는 점수로 인해 논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도 세계 많은 팬들은 김연아 선수가 우승이었다고 잘못된 판정이라고 얘기가 이어집니다. 소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하지만 그 이후 아이스쇼에 많은 출연을 하게 되어 다시 한번 은반위의 피겨 여왕을 여러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출생
1990년 9월 5일
경기도 부천시 중구 도당동
이름
김연아(경주 김씨)
국적
대한민국
신체
164cm
상훈
국민훈장 모란장, 체육훈장 청룡장
학력
신흥초등학교
도장중학교
수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고려대학교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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